[한경 CFO Insight]
민성훈 수원대학교 교수. 마스턴투자운용 ESG위원장. 「투자의 미래 ESG」 저자
지난해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라는 곡이 발표된 지 4년 만에 각종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해 화제가 됐다. 특히 오랜 흥행 실패로 팀이 해체 직전까지 갔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당시 이러한 역주행의 이유 중 하나로 유튜브가 거론됐다. 어느 유튜브 채널에 이 곡의 댓글 모음 영상이 업로드되었고,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면서 인기가 반전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영상을 재생산해서 업로드할 수 있고, 그것을 정해진 알고리듬에 따라 시청자에게 추천하는 유튜브의 시스템이 역주행의 발단이 됐다는 것이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부상하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투자에서 재무적인 수익뿐 아니라 환경, 사회, 지배구조와 같은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전략이 자본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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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선한 투자’의 전통은 최근 시작된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이름으로 시도됐지만 환영받지 못하다가, 이제야 ESG 투자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브레이브걸스 못지않은 역주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환경의 변화가 롤린의 유튜브와 같은 역할을 해준 것일까? ESG 투자의 데뷔 시절부터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선한 투자의 기원은 종교단체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래전부터 술이나 담배와 연관된 사업을 멀리한 이슬람교도, 18세기 노예거래에 반대한 퀘이커교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수익보다 종교적 신념을 더 중시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인권, 노동, 주거, 교육 등 사회적 가치를 목적으로 결성된 비영리 단체들이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단체 고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그들의 활동은 미션투자라고 불렸다.
1960~70년대 시민운동이 성숙하면서 자본시장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게 됐다. 미국의 기관투자자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며 투자를 회수한 사건이 유명한 일화다. 여기에는 흑인 노동운동가였던 레온 설리번(Leon H. Sullivan) 목사의 인종차별 반대운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에 들어 대학 기금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및 관련 기업에서 투자를 회수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많은 기관투자자에게 번져서 아파르트헤이트 폐지에 기여한 것이다. 자본시장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사회책임투자라고 불렀다.
1980년대에는 환경적 가치가 중요하게 대두됐다. 여기에는 1987년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브룬틀란보고서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보고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해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자본시장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지속 가능 투자라는 말이 유행하게 됐다. 선한 투자의 전통은 2000년대에도 지속되고 있다. 기업에 투자하면서 그 기업이 사회나 환경에 미치는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함께 생각하는 임팩트투자가 새 이름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여러 움직임은 자본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근본적인 변화는 만들지 못했다. 선한 투자가 큰 인기를 끌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선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수익을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의 돈을 대신 운용하는 기관투자가에 도덕과 양심에 호소하며 선한 투자를 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임팩트투자가 시작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의미 있는 시도가 하나 이뤄졌다. 유엔글로벌콤팩트, 유엔환경계획 등의 협력으로 결성된 PRI라는 단체가 2006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책임투자원칙을 발표한 것이다.
책임투자원칙은 기관투자자에게 ESG 즉 환경, 사회, 지배구조라는 세 가지 가치를 투자의 전 과정에서 고려하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내용 면에서는 이전의 선한 투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선언적 원칙뿐 아니라 그것을 준수하겠다는 서약과 결과 보고의 형식을 갖춘 규범이라는 점과 앞으로는 ESG를 고려해야만 좋은 투자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다.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PRI는 무슨 근거로 이전의 선한 투자와 달리 책임투자가 수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환경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와 정부의 규제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과 같이 다수의 국가가 참여한 약속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각국 정부의 정책과 제도에 반영되면서, 기업이 환경문제를 외면할 경우 재무적 손실로 이어지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책임투자원칙이 처음 발표된 시기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15년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참여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한 파리협약이 체결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그리고 파리협약에 따라 이전보다 강화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발표하기로 한 2020년쯤에는 자본시장도 ESG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ESG 투자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실 ESG 투자의 개념 역시 이전의 지속 가능 투자나 책임투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자본시장이 오랜 기원과 권위를 가진 이름들 대신 ESG 투자라는 이름을 선호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지속 가능 투자가 환경문제, (사회) 책임투자가 사회문제를 중시하는 느낌을 주는 반면 ESG 투자는 세 가지 요소를 균형 있게 표현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지속 가능 투자와 (사회) 책임투자가 선한 가치를 위해 수익을 양보할 수 있는 느낌을 주는 반면 ESG 투자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한편 ESG 투자가 수익 측면에서 과거보다 유리해진 이유가 국제사회와 정부의 규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함께 ESG 경영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의 발전, ESG 문제를 중시하는 소비자의 가치 변화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화석연료 못지않게 저렴한 가격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한 태양광 기술의 발전, 회계 부정을 저지른 기업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아 파산에 이른 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규제, 기술, 가치라는 세 가지 요소가 ESG 투자의 역주행을 불러온 환경의 변화이다. 이 인기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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